서던 리치 3부작 - 제프 밴더미어

2023.02.17.자 블로그 글 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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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던 리치 3부작 - 제프 밴더미어

전 원래 글을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고 비판적으로 쓰는 재주가 없고, 평소에 그렇게 생각하는 재주조차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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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원래 글을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고 비판적으로 쓰는 재주가 없고,

평소에 그렇게 생각하는 재주조차 없는,

더불어 남이 창작한 소설/영화/애니메이션(ㅁㅇㅇ 제외) 기타 등등에 한해 불호평을 남길 의지조차 없는,

길게는 8개월 전에 읽은 소설의 내용을 적당히 기억에 의존해서 이야기하고 있는(지금 연구실이라 책이 없음),

그런 여자임을 알아 주세요

 

이 후기글에는 영화 <서던 리치: 소멸의 땅>과 제프 밴더미어의 원작 <서던 리치 3부작>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 영화/소설 아무도 안 볼 거지? 다 안다)

 

이 글을 뭐 서던 리치 3부작에 대한 해석으로도 볼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은 지렁이 머리만큼이나 짧으니까요...

그런데 길은 깁니다... 독후감이라서요

 

나는 원래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이라는 제목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를 참 좋아하는데 큰 이유는 없고, 영상미부터 분위기가, 그리고 나탈리 포트만의 얼굴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인공인 리나의 남편이 탐사대원들과 함께 남긴 영상에서 내장이 꿈틀거리는 모습과, 셰퍼드를 물어 죽인 곰이 HELP라고 영원히 소리지르는 모습과, 사람들이 인간 모습의 꽃이 핀 나무로 변해버린 모습 etc.를 좋아해서 그 영화의 원작 되시는 이 소설을 생일 선물로 받아 봤다.

영화의 줄거리나 메시지나 의미심장한 해석이나 주제 의식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없었나요?: 솔직히 슥 보고 이해하기는 힘든 영화 아닙니까?

하여튼 3권을 다 보고 난 뒤 영화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을 되돌아보니 알렉스 가랜드가 무슨 느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는 알 것 같다. 1부만 읽고 만들었다는 찌라시가 도는데 난 솔직히 3부까지 가야 이해할 수 있었다. 머리가 나빴는지는 몰라도...

결론은 1부를 중심으로 한 단독 영화에 2부와 3부에 나오는 원작의 국장(탐사대에서는 심리학자)의 의도, 그리고 X구역의 진실까지 탈탈 털어 넣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고 보고(실사화 영화가 대부분 그렇지만) 원작대로 3부작 드라마로 나왔어야 됐다고 생각함...

하지만 뭐 그래도 아무도 안 봤을 것 같긴 하다. 길어진 만큼 팬층도 얇아지고 나처럼 어줍잖게 매니악한 사람들만 들러붙어서 미장셴과 영상미를 쪽쪽 빨고 있을 테니까...

3부작을 2시간도 안 되는 영화에 줄이려고 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럴 의도조차 없이 의미심장함을 돋보이기 위해 만들었는지 잘 모를 영화의 난해한 결말과 비교하면, 소설의 결말은 더 범지구적으로 찝찝하지만 나는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난 영화도 좋아한다. 네 번 넘게 봤을 정도로... 하지만 네 번 넘게 봤는데도 결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에 어디 가서 왜 좋아하는지 말하고 다니지는 않았다.)


 

 

 

나는 반복되는 그의 말에서 주로 슬픔을 느꼈다.

"나는 경계에서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길을 계속 걷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렸고, 돌아오는 길은 더 오래 걸릴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죠. 누구도 나와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난 줄곧 혼자였어요. 나무는 나무가 아니고, 새는 새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내가 아니라, 그저 아주 오래 혼자 걷는 무언가일 뿐이었습니다……."

제프 밴더미어, 소멸의 땅(Annihiliation)

 

1부, 소멸의 땅을 읽은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라 자세한 건 기억나지 않으나(미안합니다) 적당히 복원해보기로는,

1부의 주인공인 생물학자는 제11차 탐사대에서 귀환한 남편을 보고 X구역의 탐사대에 지원하기로 마음 먹게 된다. 그러나 지원 사유에 대하여 남편에 대한 죄책감이 조금 더 부각되는 영화와 다르게, 소설의 생물학자는 비교적 덤덤한 모습으로, 직접 가 보지 않으면 X구역의 진실에 대해 알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제12차 탐사대에 자원하게 된다.

생물학자의 자세한 이력에 대한 것은 2부, 경계 기관에서 컨트롤의 독백/취조, 국장의 메모를 빌어 보다 객관적으로 표현되지만, 1부에서도 그의 반사회적이고 독립적인 성향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남에게 의지하지 않으려는 의지로 움직이는 사람이며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는 성격이라고 서술되고, 인간 사회보다는 자연 속에 머물면서 편안함을 느낀다. 생물학자는 자신을 유령새라고 부르는 남편과도, 다른 사람들이 부부 간에 으레 그렇듯 긴밀한 유대를 맺지는 않았다.

X구역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오직 역할만을 사용해 서로를 호명하며 스스로도 그것이 익숙하게끔 세뇌 교육을 받는데, 생물학자는 그 누구보다도 쉽게 자신의 이름을 버린 사람이었다고 국장(의 메모)은 말한다.

1부 시점에서는 국장이며 제12차 탐사대에서는 심리학자였던 신시아는, X구역에 처음으로 삼켜진 '잊힌 해안'에서 나고 자랐던 자신의 과거(글로리아)를 제1차 탐사대의 생존자이자 사람들 사이에서는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로우리에게 약점으로 잡히고 만다. 그는 X구역 안으로 미친 듯이 탐사대를 보내는 로우리를 제지하고 싶어하지만 자신의 권한으로는 그럴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때문에 최대한 많은 변수를 시도하여 X구역 내부의 <그것>을 자극하고자 했다. 변수를 달리 한 탐사대가 다른 이들과는 다른 결말을 맺는다면, 자신이 실제로 있는지도 모르는 <그것>을 자극한 것이고 또 그 존재를 증명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냥 뭐 내가 과대해석한 것일 수도 있다.)

생물학자는 이런 국장이 만들어 낸 일종의 비장의 카드로서 묘사되는데, 그는 실제로도 X구역 안에서 이렇게까지 오래 살아남은 자는 없었을 거라 평가되는 인물이다. 지형적 변이(동굴, 혹은 탑)에서 모독적이고 이질적인 구절을 적어 내리고 있는 무언가와 접촉하게 된 그는, 탐사대원들을 진정시키고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고안된 '심리학자의 세뇌'에 걸리지 않게 된 것을 시작으로 몸이 정체불명의 존재로 변이하는 것을 억지로 늦춰 가며 생을 유지해왔다.

앞서 생물학자는 남편과도 긴밀한 유대를 맺지 않은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X구역 속에서 일종의 기록으로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지와 유언을 남기고, 또 남편이 남긴 기록의 흔적을 더듬어 감으로써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성정이었던 남편이 사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비로소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생물학자는 자신이 마음을 열기를 바라면서 언제나 자신을 활짝 열고 기다렸던 남편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했고, 대신 '그와 영원히 단절되었다'는 느낌을 받는 지금의 상황에서야 그의 속마음을 깨닫는다.

 

내가 마침내 남편의 일지를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을 때, 끝없는 빛의 파도가 나를 휩쓸며 나를 땅과, 물과, 나무와, 공기와 연결했다. 나는 열렸고 계속 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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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의 일지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몇몇 짧고 서둘러 휘갈겨 쓴 문장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내용이 나에게 쓴 편지였다. 이런 발견은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지가 마치 독이라도 되는 것처럼 멀리 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했다. 남편을 사랑했거나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죄책감에 가까운 감정 때문이었다. 그는 이 일지를 나와 공유하고 싶어 했지만, 이제 죽었거나 아니면 나와 어떤 식으로든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상태로 존재했다.

제프 밴더미어, 소멸의 땅(Annihiliation)

 

자신에게 영향을 끼쳤던 지형적 변이의 존재, X구역에 대한 진실. 그 어느 것에도 명확한 대답을 내리지 못한 상황이지만 생물학자는 포기하지 않았고, X구역을 탈출해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남편이 마지막으로 향하겠다고 지목한 곳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등대를 지나 바다를 향해 배를 타고 나감으로써 1부에 등장하는 생물학자의 여정은 막을 내린다.

그리고, 2부에서는 자신의 할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일평생 비밀 요원 노릇을 해 오다가 서던 리치의 새로운 국장을 맡게 된, 컨트롤(본명 존 로드리게즈)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2부는 읽으면서도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했던 것 같은데, 서던 리치로 부임된 지 얼마 안된 컨트롤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1, 이곳에 있는 누구도 믿을 수 없고, 그래서는 안 되지만

2. 과거 서던 리치에서 근무했던 어머니가 나를 이곳으로 보낸 진의와 X구역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파헤쳐야 하며

3. 그 와중에도 대부분의 상황이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는... 편집증을 불러일으키는 면모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컨트롤은 조각가였던 아버지, 자신과 마찬가지로 요원인 어머니를 두고 있다. 그를 어렸을 적 키워 줬던 잭 할아버지마저도 비슷한 일에 종사한 바 있으며(고 나는 기억을 한다. 일단은...) 유소년기의 컨트롤에게 은근슬쩍 총까지 보여 주었을 정도다. 때문에 컨트롤의 인생은, 아무리 자신이 스스로 내린 결단이라 하더라도 대부분이 주변 상황에게 휩쓸리거나 명령을 받아 수행한 일환일 뿐이며, 심지어는 자신이 자각하지도 못한 사이 세뇌가 이루어짐으로써 무의식적으로 행동한 결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컨트롤은 서던 리치에 근무하고 있는 과학 부서의 체니와 휘트비, 부국장 그레이스, 그리고 자신이 좇아야 하는 국장의 망령과 X구역에서 귀환한 1부의 생물학자에게까지 접촉해가며 이곳의 진실을 파헤치려 애쓴다. 그러면서 컨트롤은 자신의 성과를 보고해야 했던 상관인 보이스가 사실은 어머니와 모종의 컨택이 있던 제1차 탐사대의 생환자 로우리임을 알아내고, 국장이 부국장을 제외한 서던 리치의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X구역 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는 사실을 조사했으며, X구역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전부 유전자가 복제되어 방출된 무언가일 뿐이고 생물학자 또한 그 본인이 아닌 복제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참고로, 국장이 나름 공을 들인 사람답게 생물학자는 그 복제품조차도 다른 흔한 가짜들과 다르게, 독립적인 자유 의지가 엿보이는 존재다. 작중에서 생물학자의 복제-유령새만큼 진짜와 구분하기 힘든 가짜이자 중요하게 다뤄지는 존재는 제1차 탐사대의 생존자이며 X구역에 대한 두려움과 집착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로우리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는 와중에도 점점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던 X구역의 '경계'는 점점 다가와, 내부를 탐험했다 귀환한 자들의 몸을 일종의 입구이자 연결고리로 사용함으로써 2부의 막바지에는 컨트롤을 포함한 모두가 있던 서던 리치를 집어삼키기에 이른다. 컨트롤은 X구역의 확장을 두려워하며 광인처럼 도망쳤지만, 처음 자신을 서던 리치에 보냈던 어머니의 충고: 생물학자가 무언가 결정적인 단서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에 따라, 혼란스러운 사이 본부에서 도망친 그를 찾아 떠난다. 그리고 외딴 섬에서 생물학자와 조우한 컨트롤은 결국 물러서지 않고서 생물학자가 불러온 X구역의 새로운 입구를 통해 경계를 건넌다.

여기까지 읽었는데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어요 너무 난해해요: 제 설명력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이런 내용임

3부는 총 네 사람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되며 떡밥을 일부분 회수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1. 지형적 변이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문장을 적어 내리던 무언가는 등대지기 솔 에반스로, 잊힌 해안의 등대에 거주하고 있는 인물이자 과거에는 많은 신학적 이론들을 결합해 신도들을 끌어 모으던, 사실상 사이비인 목사였다. 그는 유년의 신시아(국장이자, 심리학자이자, 어린 시절 이름은 글로리아)와 친분이 있었던 중년 남성이며, 컨트롤의 어머니가 본부의 숨결이 닿고 있는 비밀 단체 S&SB와 함께 등대 근처에서 벌어지는 수상한 일을 조사하고 있었던 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한 사람이기도 하다.

솔은 등대지기 일을 하던 중, 아랫부분에 구멍이 뚫린 렌즈를 살피다가 자신의 손가락을 통해 <무언가>가 침입하는 느낌을 받는다. (이 부분은 추후에 설명되지만, S&SB의 일원이었던 헨리가 렌즈에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내고 벌인 일이었다. 무슨 말이냐고요? 소설을 읽어보세요)

그 이후로 솔에게는 형언할 수 없는 환시와 환청이 들리며 '내면의 목소리를 입 밖으로 내고자 하는 욕망', 다시 말해 예전처럼 설교를 하고픈 마음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는데, 그는 자신이 정말로 '변이'해버릴 것을 두려워하며 스스로 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려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솔(그리고 그의 곁을 맴도는 헨리)의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에게까지도 영향이 퍼지며 정신적으로 이상 증세를 보이거나 공간이 왜곡되는 현상이 심해지자, 솔은 자신이 미칠 여파를 최소화시킬 수 있을 만큼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스스로를 유폐하려 한다. 이후, 그는 '내면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적어 내리는 지형적 변이의 괴생명체로 변했으며 그와 헨리를 중심으로 X구역이 점점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2. 신시아는 아주 우연히, 잊힌 해안이 X구역에 집어삼켜지기 전 그곳을 빠져나가게 된 사람이다. 그는 X구역을 조사하고 있다는 단체인 서던 리치에 대해 알게 된 이후로, 그곳에 의심 없이 들어가기 위해 이름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모든 일생을 꾸며내지만, 자신의 면접을 보게 된 로우리에 의해 약점을 잡히고 만다. 신시아는 로우리의 명령에 따라 그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지시를 내려야만 했지만, 그 이면에서는 상대를 제지하고 서던 리치의 탐사 방침을 바꾸기 위해 나름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려 한 사람이다. 끝내 신시아는,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 스스로 경계 안으로 발을 들이기로 마음을 먹는다.

1부에서 묘사된 신시아는 제12차 탐사대의 심리학자로서 많은 것을 은폐하고 거짓으로 둘러대려 하는 모습이 엿보이지만, 기실 그의 많은 일생은 잊힌 해안에 두고 온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머니, 날 잊지 말아달라고 외치며 이별했던 솔 에반스, 사실상 자살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 탐사대원들, 그리고 자신의 말을 듣고 함께 X구역으로 몰래 들어갔다가 영혼의 일부분을 잃어버린 모습을 보이는 휘트비에 대한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들으로 점철되어 있다. 3부는 1부에서 탐사 도중 사망한 신시아의 일생을 어린 시절부터 되짚어가며 관조하듯 묘사한다.

3. 자신이 생물학자의 복제품에 불과함을 깨달은 유령새컨트롤은, 생물학자와는 완전히 독립적이고 별개의 존재로 행동하고 싶어하는 유령새의 의견에 따라 등대가 아닌 섬으로 향한다. 컨트롤은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눈앞에 놓인 일에 집중하기 위해 휘트비의 보고서에 의지하고, 유령새는 자신 내면에 존재하는 빛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제 기억 속에 존재하는 생물학자가 내렸던 의견, 감정 등에 불만스러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마침내 섬에 도달했을 때, 그들은 서던 리치가 X구역에 집어삼켜진 뒤로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을 혼자 지내야 했던 부국장 그레이스를 만난다. 그리고 생물학자가 이 섬에 30여년간 살면서 생전에 남겼던 유언에 이어, X구역의 <무자비한 치유와 가차 없는 재건>을 통해 새로운 존재로 재구성된 기존의 생물학자와 조우하게 된 후, 이곳을 변화시키기 위한 또 다른 여정을 떠난다.

진짜 이렇게 써놓고 보니 무슨 씹뜨억 소설인가 싶네요

3부의 번역 제목은 빛의 세계지만 원제는 Acceptance로, 3부에 나오는 네 사람(그리고 X구역에 추후 삼켜질지도 모르는 인류)이 각각 어떤 엔딩을 맞이하는지 생각해 보면 꽤 타당성이 있는 제목이라고 생각된다.

 

… 살다 보면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일에 휘말리고,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절대 알 수 없기도 하잖아요.

지금 우리가 그 일부가 된 세계는 받아들이기 어려워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들죠. 지금조차 내가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말이에요. 하지만 받아들여야 잘못된 과거를 바꿀 수 있을 거예요. 어쩌면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 또한 저항하는 방법일지도 모르죠.

난 아저씨를 기억해요, 솔. 난 빛의 수호자를 기억해요. 한 번도 아저씨를 잊은 적이 없어요. 그저 돌아오기까지 오래 걸렸을 뿐이에요.

사랑하는 글로리아가.

제프 밴더미어, 빛의 세계(Acceptance)

 

 

등대지기 솔 에반스는 <그것>에 의한 자신의 변이를 부정하려 했지만, 마지막에는 그것을 거스르지 못한 채 <기는 것>이 되어 현 시점에서는 최후의 최후까지도 지형적 변이의 내부에서 설교에 가까운 문장을 적어내고 있다. (X구역이 발생한 원인 중 하나라고도 생각되지만, 다른 주인공들에 비하면 내력이 평범해서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인류를 그럭저럭 대변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함)

전 국장이자 심리학자인 신시아는 3부의 초반에 X구역 내에서 자연과 동화되는 죽음을 맞이하면서 한 번, 후반부에 제12차 탐사대와 함께 X구역으로 들어오며 한 번, 이렇게 총 두 번에 걸쳐 자신에게 다가오는 일과 세계의 변화를 외부에서 내려다보듯 덤덤하게 되돌아보고 또 받아들인다.

생물학자는 남편이 향했다던 섬에 도착해, 정신마저 변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 고통으로 자신을 다스려가며 오랜 세월을 살아남았다. 그는 어쩌면 남편의 새로운 모습일지도 모를 부엉이를 지켜보면서 목숨을 유지하다, 부엉이가 죽은 뒤로는 변이에 저항하지 않고 육지와 바다, 어느 곳으로든 갈 수 있는 괴물으로 다시 태어난다.

자신이 기억하는 일생의 모든 부분이 자신의 것 같지가 않음을 깨달음으로써 자신이 생물학자의 복제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유령새는, 다른 복제품들과는 달리 자신만이 독립적인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묘하게 집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 태도는 변이를 수용한 생물학자의 모습과 직접적으로 조우하며 그의 존재를 받아들인 이후부터 다소 누그러지며, 그는 그레이스와 함께 X구역을 나가고자 결심한다.

항상 모든 것을 컨트롤해야 했지만 그것에 자신의 의지는 거의 동반되지 않았던 컨트롤은 X구역을 두려워하던 순간을 떨쳐내며 그 내부로 들어선다. 그리고 유령새/그레이스와 함께 하던 여정의 막바지에서 X구역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하얀 빛을 마주하고, 그것을 향해 몸을 던진다. 신시아의 말처럼 X구역과 내부에 존재하는 <그것>을 자극하고 또 변화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그는, 마지막 순간에 <기는 것>이 '주춤하듯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게 만듦으로써 인생의 마지막에서만큼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결정과 그에 따른 결과를 이끌어낸다.

마지막으로, 솔 에반스가 접촉했던 빛이자 X구역의 내부에 존재한다고 일컬어지는 <그것>은 모종의 이유로 지구에 떨어졌던 외계의 유기체다. 재앙으로 파괴된 생태계를 최선을 다해 재생시킨다는―현재는 뒤틀렸다고도 할 수 있는 본능에 따라 접촉하는 환경을 <가차 없이 치유>하고 <무자비하게 재건>함으로써 자연을 원시에 가까운 상태로 되돌린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어, 그 과정에서 인류가 오염시킨 모든 것 또한 정화된다.

때문에 서던 리치 3부작에서 묘사되는 X구역과 <그것>은 여태 인간이 쌓아온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는 움직임―다시 말해, 자연을 오염시키고 파괴한 인간에 대한 외계 생명의 이해할 수 없는 형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이 이유를 불문하고 언젠가는 받아들여야 하는 멸망과 회복, 공존의 미래를 SF라는 장르에 맞추어 급진적으로 묘사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점에서, 컨트롤의 행동으로 X구역이 전진을 멈출지―아니면 끝없이 나아가 지구 전체를 집어삼킬지가 소설의 결말에서 명시되지 않았다는 것이 내 입장에서는 그리 이상한 결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또 받아들이는 행위가 포기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신시아―글로리아의 편지에서도 아주 직관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만큼, 이제부터 벌어질 일이 지구의 파괴인지 구원인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 '뭔가가 살아남을 것'이며, 이는 아마 유령새처럼 자연적인 생태계에 적응하고 변화된 새로운 인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물학자가 말했듯 "유일한 해결책은 자연환경을 방치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류가 사라져야 한다."라는 구절도 말 그대로 '인간종이 사라져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일반적인 인류의 개념이 해체되고 그 존재가 자연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처럼 들렸다. 후술하겠지만 삶 전반에서 반'인류'적인 모습을 보이던 생물학자도 전개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남편(인간)과 부엉이(남편을 연상시킴)에게 마음을 열은 듯 보였으니까... 그냥 개소리일 수도 있음!!

제가 모든 소설을 너무 긍정적으로 과대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러니 제발 서던 리치의 용두사미 전개와 찝찝한 결말에 대한 욕을 멈추세요!

이 소설과 저를 한몸으로 간주하지는 않겠습니다!

저도 이거 어제 다 읽었는데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은 부분도 많고 불편한 기분도 아직까지 드니까요

여러분은 저와 동지입니다

그래도 제프 밴더미어가 다 생각이 있었겠죠?

적어도 이 블로그 포스팅보다는 서던 리치 3부작이 훨씬 낫고 영양가 있음

(몸에 좋은 건 맛이 없다니 여러분도 참고 드셔보시길)

 

 

p.s. 왜 이렇게 생물학자 인용구만 있냐면 그냥 내가 생물학자라는 캐릭터성을 좋아해서 그럼

X구역이라는 환경 자체가 인류에게 정말 가차없다는 점 때문에 지구 등처먹으며 살다가 제프 밴더미어에게 딱 들킨 우리 입장에서는 부정적으로 보이는 측면이 조금 있는데,

자연을 제외하면 (그러니까 거의 모든 인류임ㅋㅋ) 누구와도 가까이 지내고 싶어하지 않던 생물학자가 X구역에 도착한 뒤에야 남편에게 마음을 열고, 남편을 떠올리게 만드는 부엉이를 지켜보며 지내다가, 그가 죽고 나자 자신도 완전히 변이를 받아들였다는 걸 생각하면...

X구역에서 죽는 건 완전히 사라지는 일이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알던 모습을 하고 있지 않거나 정확히 어디 있는지 모르더라도 자연과 하나가 되어 내 곁에 머무르고 있을 것이며, 나 또한 그렇게 되리라는 확신을 주고 있어서 좋지 않나요? 심지어 인류는 자연과 대립하고 자연을 굴복시키고 뭐 그런 뛰어난, 군림의 천재, 군림의 왕, 무시무시한 군림의 악마, 생태계 최고의 우월종처럼 느껴지도록 행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우리도 결국에는 그들의 일부라는...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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